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의 내기>

이선생2 2017. 10. 13. 15:50


 

험준한 묘향산 줄기를 한 달음에 내려오는 한 스님이 있었다.

 비록 의발은 남루했지만 그 위엄은 천하를 압도하는 기풍을 지녔다.

축지법을 써서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로 향하는 그 스님은 사명대사. 서산대사와 도술을 겨루기 위해 가고 있었다. 서산보다 스물세 살이나 아래인 사명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뛰어난 재주에

자신감이 풍부했던지라 자신이 서산대사보다 술수가 아래라느니,

높다느니 하는 소문을 못들은 체 했으나 풍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자 갑자기 실력을 한번 겨뤄 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신출귀몰하신 서산대사의 실력을 나도 모르는 터는 아니나 나의 묘기로 한번

서산을 궁지에 몰아넣어 세상을 놀라게 해야지.”

사명의 마음은 다급했다. 서산대사가 있는 금강산 장안사 골짜기에 이르자

우거진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천년의 적막을 흔들며 요란하게 울렸다.

사명당이 이 계곡을 오를 무렵 서산대사는 굴리던 염주를 멈추며 상좌를 불렀다.

“이 길로 산을 내려가 묘향산 사명대사를 마중하여라.”

상좌는 깜짝 놀랐다.


“이곳 장안사에 사명스님이 오신다는 전갈이 없으셨는데요.”

“허허 그렇지만 골짜기를 내려가노라면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이 있느니라.

바로 거기에 사명대사가 오시고 있을 게야.”

서산대사는 앞을 훤히 내다보는 듯이 말했다.

“갑자기 냇물이 거꾸로 흐르다니...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상좌는 고개를 갸웃둥 거리며 절을 나섰다.

“정말 사명대사가 오시는 걸까. 아니면 대사님께서 나를 시험하려 함인가.”


평소에 없던 분부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골짜기를 향해 내려가던

상좌는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히 냇물이 거슬러 흐르는 게 아닌가...

고개를 들어 앞을 살펴보니 과연 저만큼 웬 스님이 오고 있었다.

상좌는 그 스님 앞에 공손히 합장 배례했다.

“스님, 스님께서 사명대사 이시온지요?”

“그렇다마는…”

“먼 길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저는 서산대사의 분부 받고 대사님을 마중 나온 장안사 상좌이옵니다.”

“아니… 그래?”


사명당은 내심 놀랬다.

‘서산대사가 어떻게 내가 오는 줄 알고 마중까지 내보냈을까?’

마치 덜미를 잡힌듯 아찔함을 느꼈다. 상좌는 앞장서서 걸었다.

소문만 듣던 사명대사를 직접 모시게 되니 누구에겐가 자랑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이윽고 장안사에 이르렀다. 그때 법당문이 열렸다. 서산대사가 막 법당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서산대사가 미쳐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사명당은 공중에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를 잡아 쥐고는 첫 말문을 열었다.

“대사님, 제 손아귀에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당의 손 안에 있는 새인지라 새가 죽고 사는 것은 사명당에게 달려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택하기 어려운 그 질문 앞에 서산대사는 의연히 입을 열었다.

“허허 사명대사, 이 몸의 발이 지금 한 발은 법당 안에 있고,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는데

이 몸이 밖으로 나가겠습니까, 안으로 들겠습니까?”


이 또한 난처한 질문이었다. 안으로 든다고 하면 한 발마저 밖으로 내놓을 것이요,

 밖으로 나갈 것이라 답하면 안으로 들일 것이니...

잠시 생각에 잠긴 사명당은, 멀리서 손님이 찾아오는데 밖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다.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과연 그렇소. 사명당이 그 먼 길을 한달음에 오셨는데 어찌 문 밖에 나가 영접치 않겠소.”

모든 답이 끝난 듯 서산은 사명에게 어서 올라올 것을 권했다.

그러나 사명은 손에 참새를 쥐고 있는 터라 답을 듣고 싶었다.

“고맙소이다. 대사님, 그런데 이 참새는 어찌 되겠습니까?”

“불도를 닦는 분이 어찌 살생을 하겠습니까?”


서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대 고승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명은 자기가 찾아오게 된 사유를 말하고 이번엔 도술로 겨루자고 제안했다.

사명은 지고 온 봇짐에서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 하나를 꺼냈다.

잠시 그릇 속의 바늘을 응시했다. 이게 웬일인가. 바늘은 먹음직한 국수로 변했다.

사명은 맛있게 국수를 먹으면서 서산대사에게도 권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산대사 역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곤 사명과는 달리 입에서 바늘을 뱉아 놓았다.

 대단한 신술이었다.


사명은 다시 계란을 꺼내더니 한 줄로 곧게 쌓아 올렸다.

그러나 서산은 그 반대로 공중에서 계란을 쌓아 내려왔다. 사명당은 초조해졌다.

“아래서 위로 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사명은 형세가 열세임을 느꼈으나 한 번 더 겨루기로 제안했다.

사명당은 하늘을 우러렀다. 구름 한 점 없던 장안사 상공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뒤덮이더니

천지를 흔드는 천둥번개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땅 위의 모든 것을 삼킬 듯한 무서운 위세였다.

“사명대사, 참으로 훌륭한 신술이오.”

이쯤 되면 서산대사도 굴복할 것 같아 사명은 내심 매우 기뻤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산대사는 헛기침을 했다.

“뭘요, 대사님께선 아마 이 비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하늘로 되돌리시겠지요.”

“허어, 사명대사님이 미리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사명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서산은 좀 전의 사명처럼 합장한 채 하늘을 우러렀다.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뚝 그치면서 빗방울이 모두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올라가던 빗방울이 갑자기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새들로 변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청명한 온 천지엔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와 환희로 가득 찼다.

 한참 동안 가슴 조이며 이 아름다운 광경을 쳐다보던 사명당은 눈앞에 벌어진

변화무쌍한 광경에 자기 도술의 부족함을 깊이 깨달았다.


“대사님! 진작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과연 천하의 스승이옵니다.

부끄러운 몸이오나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시고 법도에 이르도록 가르침을 내려 주옵소서.”

사명당은 눈물로써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서산대사도 마음이 흡족했다.

“진정 그러하시다면 나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소. 그대같이 슬기로운 제자를 맞게 되니

 더없이 기쁘구려.”

두 사람은 서로 합장한 채 오래도록 부처님 앞에 서 있었다.

사명대사는 그날부터 서산대사의 수제자로 계를 받고 용맹 정진하였다고 .


출처 : 현지사를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자연 원글보기
메모 :